[살며 사랑하며] 위기를 이기는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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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관련 뉴스를 읽다 앳된 17세 공주가 텃밭을 가꾸는 사진을 보았다. 여왕이 공주 시절 윈저성에서 채소 농사를 짓던 모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보트로 상징되던 독일군의 해상 봉쇄로 식량 수입이 어렵자 영국은 1939년부터 정원과 공원 등에서 채소를 기르는 ‘승리를 위한 농사(Dig for Victory)’라는 텃밭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사진이 찍힌 1943년 당시 영국 전역에는 140만개 텃밭이 일궈졌다. 이 캠페인의 원조라 할 미국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때 승리의 정원(Victory Garden)이라는 텃밭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전통은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져 1943년 미국에서만 2000만 가구(인구의 5분의 3)가 참여해 그해 소비된 채소의 42%를 자급했다.

국가적 위기마다 소비를 줄이고 자급하려는 노력은 자연스럽다. 재작년 팬데믹 초창기에 록다운으로 물류가 마비돼 신선한 채소를 구하지 못하자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텃밭이 유행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파로 물가가 7% 이상 오른 독일과 프랑스도 옥상이나 정원의 텃밭에서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었다. 우리나라도 작년 봄 파테크(파+재테크)라는 신조어를 만든 농산물값 상승에 이어 올해 가뭄과 긴 장마로 배추, 오이, 시금치 가격이 작년에 비해 70%나 오르며 홈파밍(Home Farming)이나 식집사(식물+집사) 같은 신조어를 유행시켰다.

서울시 도시농부가 64만명에 텃밭이 2㎢(서울의 0.33%)로 지난 10년간 6배 이상 늘었다지만, 새벽 배송이 장악한 현실과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전쟁도 현실이고 팬데믹도 아직 끝나지 않고 이젠 초인플레이션과도 싸워야 하지만, 더 센 녀석인 기후위기의 그림자가 짙다. 텃밭과 정원은 물론 상자텃밭과 식물재배기까지 먹거리를 직접 키우고 또 나누는 생활의 확산만이 위기를 이겨낼 첩경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2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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