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나의 애창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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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한번 미국에 다녀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 문인들의 문학강연 초청에 의한 것이었다. 다녀온 도시는 애틀랜타. 미국 동남부 지역의 도시.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중심 도시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되는 도시라 했다.

실상 서부의 로스앤젤레스(LA)였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일곱 차례나 다녀와 지나치게 익숙할뿐더러 또 내가 어느새 나이가 들어 그렇게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여행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이번의 애틀랜타 여행은 잘했다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한 중심부, 그야말로 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틀랜타문학회에서 준비한 여름 문학 축제에서 문학강연을 했다. 동행인 유성호 교수와 내가 두 차례씩. 애틀랜타 한인회관 넓은 강당에서 이틀 동안 애틀랜타 교민들과 애틀랜타 문학인들을 상대로 했다. 마지막 강연이 내 차례였는데 강연을 마치면서 아무래도 섭섭한 마음이 들어 노래 하나를 불렀다.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인 ‘이별의 노래’.

반주도 없이 3절까지 노래를 불렀는데 함께한 청중도 따라 불렀음은 물론이다. 아니,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목을 놓아 노래를 부르는 걸 단상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찡해 왔다. 아, 저 사람들. 이국땅에 와서 낯선 사람들과 비비대기치며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처럼 고국에서 온 문인의 강연을 듣고 헤어지는 시간에 부르는 노래가 예사롭지 않았다.

세계를 두루 살펴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노래를 함께 부르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다. 부드럽고도 넓은 강물이 돼 멀리까지 흘러간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것으로 놀이와 대화와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 있지만, 노래처럼 완벽하게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일은 없지 싶다.

7박8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밤, 문학회 회장의 집에 회원들과 함께 초대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 기기가 마련된 넓은 홀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LA 방문 때도 그렇지만 미국 여행 마지막 밤엔 그렇게 노래방 기기가 있는 방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다. 한국에서도 좀처럼 가지 않는 노래방 시간을 미국에서 갖게 되는 것이다.

내 차례가 돼서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배호가 부른 ‘파도’와 나훈아가 부른 ‘애정이 꽃피던 시절’. ‘파도’는 내가 20대에 부르던 노래다. 막걸리잔을 앞에 두고 젓가락 장단으로 술상을 두드리면서 부르던 노래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 그런가 하면 나훈아의 ‘애정이 꽃피던 시절’은 40대 무렵 충남 공주에 처음 와서 살던 시절, 공주의 문인들과 어울려 문학기행을 가면서 관광버스 안에서 부르던 노래다. ‘첫사랑 꽃피던 시절 얼굴을 붉히면서/ 철없이 매달리며 춤추던 사랑의 시절….’ 그만큼만 불러도 가슴은 울렁임으로 가득 차고 마음은 한사코 옛날로 돌아간다.

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모두가 그렇게 애달픈 노래들이고 노랫말 속에는 또 실연과 이별만 있는 걸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의 애창곡들. 자라지 않는 아이가 그 노래들 속에는 들어 있다. 실상 노래는 울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그 울음을 대신해주는 또 하나의 울음이 아닐까. 지나고 보니 애틀랜타에서 만났던 분들과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리운 마음이다. 이 또한 노래가 데려다주는 무지개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태주 시인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2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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