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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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FNB 스타디움. 2010년 남아공월드컵 폐막식이 열렸던 이 경기장에 91개국 정상들이 모였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 4명이 참석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제는 찰스 3세가 된 영국 찰스 왕세자도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임 첫해를 보내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이 현장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이었다. 이날은 12월 5일, 95세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공식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당시에도 ‘세기의 추모식’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세계 정상들이 남아공에 집결했다. 언론에는 ‘조문외교’라는 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조문외교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실제로 연출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헌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다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나눈 그 유명한 악수 장면 말이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단절한 뒤 53년 만에 처음으로 두 나라 정상이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 악수는 양국 관계의 해빙을 상징하는 장면처럼 전 세계에 전송됐고, 미국 보수파는 이에 불끈했다. 백악관은 사전에 계획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을 했다지만, 어쨌든 양국은 이로부터 꼭 1년 뒤인 2014년 12월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리고 다음해 봄 파나마시티에서 미국과 쿠바 두 정상은 역사적 회동을 하며 다시 한 번 긴 악수를 나눴다. 그러니 추모식에서 두 정상의 깜짝 악수는 실로 ‘만델라의 마지막 선물’이라 불릴 만했다. 그날 오바마 대통령이 헌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20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해방자’이자 ‘인류의 영혼을 결속시킨 역사의 거인’ 만델라는 자신이 원했던 고향 쿠누에 누워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으리라.

2022년 9월 18일, 96세로 생을 마감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전 세계 정상들이 런던에 모여들었다. ‘세기의 장례식’에 초대된 이들은 여왕의 관에 참배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찾았다.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과는 별도로 VIP를 위한 발코니가 마련됐고, 각 나라 지도자들의 발코니 조문 모습이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왔다. 특히 검은 운동화를 신고 런던 거리를 걸어서 조문을 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자주 눈에 띄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대신 영부인이 참석해 조문을 마쳤다. 거의 200여개 국가에서 조문을 왔다고 하니 평소에 자주 보거나 듣지 못했던 나라의 조문단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부탄을 여행할 때 도시마다 집집마다 사진이 하도 많이 붙어 있어서 매우 낯이 익은 젊은 부탄 국왕 내외가 검은색 전통 복장으로 조문을 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다.

런던에 간 대한민국 대통령이 리셉션에 참석하고도 조문 일정을 마치지 못했다는 뉴스가 하루 종일 인터넷을 달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교통 통제 현장에서도 전용 리무진 ‘비스트’를 타고 웨스트민스터에 도착했다니 세상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이구나 했는데, 또 다른 예외가 우리 대통령에게 발생한 것인가? 언론에서는 교통 통제 때문이었다고 했고, 나중에는 도착 시간에 따라 왕실의 안내대로 움직인 거라고 해명했지만, ‘조문외교’에서 조문이 빠지고 외교는 남을 수 있을까?

전 세계적 슬픔이 국내 정치에 활용되는 것이 유감이라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그런 슬픔에도 조문할 시간조차 맞추지 못하는 대통령실을 보고 있는 국민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줄까 싶다. 세계 정상들이 다녀간 웨스트민스터 조문 현장,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 말고 또 누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2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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