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화장실, SMR 그리고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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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다. 유엔은 매년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 상하수도, 위생은 늘 골칫거리였다. 잘 갖춰진 상하수도 체계와 화장실은 세균, 바이러스로부터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하지만 아직 화장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달 25일 삼성종합기술원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과 협업해 ‘신개념 화장실’ RT(Reinvent Toilet)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발표했다.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상하수도 시설 없이도 가동되며 하루 0.05센트로 운영할 수 있는 화장실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친 것이다. 물과 하수 처리 시설이 부족한 저개발국에선 화장실이 없어 약 9억명이 야외에서 대소변을 본다. 이게 수질오염을 유발하고, 매년 5세 이하 어린이 36만여명이 장티푸스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2000년 게이츠재단을 세우고 국제적 보건·의료 확대, 빈곤 퇴치를 운영 목적으로 내걸었다. 게이츠재단은 저개발국 화장실 보급, 소아마비 예방접종 확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화장실과 소아마비 예방접종은 꽤 진전을 이뤘다. 게이츠재단은 LG화학과 협력해 소아마비 사백신을 개발했고, 세계백신면역연합을 설립해 73개국 어린이 60%가량에 다양한 예방접종 혜택을 주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에너지다.

에너지는 인류의 삶에서 필수적이지만 화석연료는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촉발한다. 대안으로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가 있지만 효율이 낮고 간헐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단점이 뚜렷하다. 그래서 게이츠는 원자력에 주목한다. 원자력발전소는 탄생한 지 30여년 지났지만 대대적 혁신을 겪지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엄청난 위험을 품지만, 인류가 축적한 과학기술을 활용한다면 안전하면서 효율성 높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생화학자이자 SF 소설가였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이츠는 2006년 정보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설계하는 기업 테라파워를 세웠다. SK그룹에서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회사가 이곳이다. SMR의 발전 용량은 300㎿ 안팎(기존 원전은 1000㎿ 안팎)으로 작다. 모듈 형태로 부품을 조립하기에 원가 절감이 가능하고, 경수로나 중수로보다 치명적 안전사고 가능성이 작다고 한다. 테라파워에서 설계한 SMR은 기존 원자로의 중성자보다 빠른 고속 중성자를 사용해 효율을 100배 높이고, 핵분열로 발생한 열을 물이 아닌 액체소금으로 냉각해 안전성을 확보한다. 폐기물은 대형 원전의 4분의 1~10분의 1 수준이다. 테라파워는 2024년부터 미국 와이오밍주의 작은 탄광 도시 캐머러에 이 원자로를 짓는다.

소아마비 백신에서 시작해 화장실을 거쳐 원자로에 이르기까지 게이츠가 꿈꾸는 미래는 요란하거나 휘황찬란하지 않다. 대신 과학의 힘, 기술의 힘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는 과학기술로 빈곤, 불평등, 기후위기 같은 난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기업가는 이윤만 추구하는 비정한 이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과학기술, 과학자, 기업가의 소명이라고 웅변한다.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서울대 학위 수여식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느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할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2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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