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특혜가 되는 특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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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정훈장교가 기수 800여명이 모인 강당에서 “군대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나”라고 물었다. 손을 들었다. 반항심 같은 게 섞이진 않았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였다. 입소 후 달라진 환경에 줄곧 동기들과 병역 제도에 대한 불만을 나눴던 것도 손을 든 배경이 됐다.

눈치가 없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 외에 한두 명 더 손을 든 것으로 기억한다. 빨리 손을 내려 되도록 눈에 덜 띄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앞으로 나오라는 정훈장교 말이 들렸다. 정훈장교가 앞에 선 이들을 가리키며 솔직하다고 박수를 쳐주라고 했지만 박수 소리가 마음 편할 리 없었다. 자리로 돌아갈 때 노려보는 것 같던 조교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제대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정훈장교의 질문에 다르게 답을 할 것 같진 않다. 다만 그래서 군대를 가지 말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지와 별개로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병역이 양심의 문제에까지 이른다면 그건 좀 다른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BTS의 병역특례를 둘러싼 논란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중이다. 그들의 성취·가치와 제도의 형평성 문제가 병역의무 원칙 및 공정 논란과 팽팽히 맞서며 쉽사리 결론 나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말에는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이 문제로 여론조사를 하자고 제안하고 국방부 장관이 “여론조사를 빨리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답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국방부가 서둘러 “여론조사를 검토하라는 지시였다”고 말을 주워 담았지만 국방 책임자가 병역 의무를 여론 추이에 따라 결정하려 한다는 비판이 커졌다.

그간 병역특례 문제는 원칙을 적용할 때보다 원칙에 예외를 두려 할 때 더 큰 반발에 직면했던 것 같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누구를 포함하느냐는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도 있지만, 특정 대회 성적이나 문화예술 분야 시상을 병역특례 대상으로 추가할 때 여론은 더 좋지 않았다. 월드컵 16강 이상,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이상 병역특례가 한 번에 그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손흥민을 둘러싼 병역특례 논란도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규정을 따른 후 가라앉았다.

병역특례 제도는 병역 잉여 자원을 활용해 국가 산업 발전, 문화 창달 및 국위 선양을 도모하기 위해 1973년 도입됐다. 그간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도입 시기와 목적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 점이 적잖다. 정부는 출산율 감소로 병역 자원이 감소하자 지난해 학력에 따른 병역 처분 기준을 폐지하고 문신과 과체중 기준을 완화했다. 국위 선양이라는 명분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와 별개로 그 모호함이 주는 형평성 문제도 끊이질 않는다. BTS와 같은 대중문화인 포함 논란은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비슷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징병제를 유지하는 현실에서 군 복무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처럼 정치인을 중심으로 논의가 길어지면서 군 복무 판단에 여론조사까지 운운했을 때의 부작용이 적잖을 것 같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시행령에 예외를 추가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제도 손질 작업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3년 전 국회 병역특례제도개선소위 결론에도 부합한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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