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어느 의원의 허위사실 공표 예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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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 멤버인 한 의원은 공개 발언을 할 때 수식어와 서술어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허위사실 공표나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라디오와 TV에 출연할 땐 부지불식간에 말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조심스레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했는데, 말의 앞이나 뒤에 ‘만약 그렇다면~’ ‘~를 전제로 말한다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것으로 보인다’ ‘~것으로 판단한다’ ‘~로 추정된다’ ‘~느껴진다’ ‘~로 해석된다’는 말을 붙이니 고소·고발에 덜 휘말리게 되더라고 소개했다. ‘뭘 했다’ ‘이렇다’ ‘저렇다’고 본인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 가정법적 상황으로 말을 하거나, ‘난 이렇게 보고 있다’는 식으로 제삼자가 평가하는 것처럼 얘기하면 법적 시비에서 빠져나갈 여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 노하우를 같은 당의 이재명 대표가 따랐다면 어땠을까. 최근 검찰은 이 대표의 대선 때 2가지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첫째 발언은 지난해 12월 방송 인터뷰 때 나온 것인데,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시장 재직 때 좀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하위 직원이라 재직할 땐 몰랐고 도지사가 돼 재판받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 뒤 김 처장이 포함된 일행과 2015년에 해외 출장을 간 사진이 공개돼 시민단체가 이 대표를 허위사실 공표로 고발했다. 다른 발언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나온 발언이다. 이 대표는 당시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용도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용도변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당국은 국토부와 성남시가 공문을 주고받았지만 협박이 아니라 협조 차원의 공문이었고, 4단계나 좋게 용도를 변경한 건 성남시 자체 판단이었다고 봤다.

검찰의 기소에 이 대표는 “말꼬투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 말 속에는 별 걸 다 시비를 걸었다는 불만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대표가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할 때 잘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든가, “안면이야 있었지만 잘 알진 않았다”고 말했다면 의미는 비슷하게 전달하면서도 법적 시비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협박이란 표현 대신 “국토부 공문에 압박을 느꼈었다”고 했어도 이런 시비가 붙었을까. 이 대표 주장대로 말꼬투리에 불과한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는다면 그 후과는 어마어마하다. 본인은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고, 당은 대선 때 쓴 돈 수백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직선거법 250조(허위사실 공표죄)는 ‘당선될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재산·행위·소속단체·지지 여부 등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에 적용된다. 같은 법 251조(후보자 비방죄)가 상대 후보를 폄훼할 때 적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250조는 대체로 후보 본인을 부풀려 선전할 때 적용하려고 만든 조항이 아닐까 싶다. 250조를 애써 적용해본다면 ‘몰랐다’와 ‘협박했다’는 발언이 이 대표의 과거 경력이나 행위를 부풀리기 위한 허위사실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법 취지에 맞는 적용인지, 또 경력이나 행위에 해당하는지는 향후 법정에서 다퉈볼 문제다.

지금은 방송이나 유튜브처럼 생생한 동영상이 추앙받고 날것 그대로의 표현에 열광하는 시대다. 그런 세태를 감안하면 앞으로 정치인들이 인터뷰나 공개 석상에서 하는 발언을 둘러싼 허위사실 공표 시비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백그라운드 브리핑 발언조차 녹음되고, 상대 당에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여야가 차제에 현행 허위사실 공표죄가 변화된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보기 바란다. 가령 법 적용 범위를 지금보다 더 구체화하거나, 발언의 정황 등을 고려해 예외 조항 등을 만들 필요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아마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서도 그럴 필요를 느끼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허위사실 유포는 분명 나쁜 행위이고 단죄해야 하지만 선거를 치를 때마다 무작정 고소·고발부터 해놓는 풍토, 그로 인한 정쟁과 국회 공전 등을 생각하면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취재:  기자    기사입력 : 22-09-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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