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공약가계부와 재정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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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시절 ‘공약(公約)가계부’라는 게 있었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134조8000억원을 마련해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재정 플랜이었다. 시작은 거창했다. ‘건국 이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가계부가 이 정부의 성적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공약가계부는 공약(空約·헛된 약속)이 됐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은 재원 조달 방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증세 없이 허리띠만 졸라 매 100조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은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졌다. 정부는 해가 바뀔 때마다 경제 상황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롤링 플랜’(계획과 실적 간 차이를 비교해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공약가계부를 관리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임기 내내 공약가계부의 이행 실적이 외부에 공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약가계부는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현 정부는 ‘재정준칙’이란 것을 만들었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채무비율 등 주요 재정지표를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이내, 통합재정수지 적자 3% 미만을 유지한다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 도입 법안도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재정준칙은 법제화되기도 전에 공약가계부 꼴이 날 상황에 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말 30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여름 휴가철에 맞춰 위로금을 지급하고, 소상공인 등 피해 계층 지원을 하려면 최소 30조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올해 부동산과 자산 시장 호황으로 초과세수가 20조~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재정 당국의 생각은 다르다. 초과세수만으로는 충당하기에 어렵고 결국 15조원 안팎의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적자국채 발행이 현실화되면 재정준칙은 무력화된다. 정부가 올해 1차 추경 때 제출한 재정관리 방안에 따르면 2024년 기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9.7%다. 정부가 제출한 재정준칙 기준(60%)에 겨우 부합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2차 추경 편성에서 15조원가량의 적자국채를 발행할 경우 이 비율은 60.4%로 올라간다. 재정준칙이 처음 적용되는 2025년 이전에 이미 국가채무 기준을 넘어서는 셈이다.

재정준칙과 공약가계부는 모두 확장적 재정을 꾀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최후의 보루로 지키겠다는 쉽지 않은 목표를 지향한다. 그나마 공약가계부는 당정청이 합심해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지만 재정준칙은 그렇지도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준칙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 제출된 지 6개월 넘도록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당은 한 술 더 떠 재정준칙을 느슨하게 고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확장적 재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재정준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재정준칙은 최소한의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로 고안됐고, 지켜지기만 한다면 미래세대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재정준칙이 제2의 공약가계부가 되지 않는 방법은 2가지뿐이다.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재정준칙 제정 및 시행은 어렵다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용도폐기하든지, 아니면 재정준칙에 준해 이번 추경 규모를 줄이는 것뿐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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