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오직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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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서양에 있는 속담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기도하라는 말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다. 바다보다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이 결혼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위험과 모험을 싫어하는 요즘 청년들은 일종의 ‘결혼 공포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비혼족이 30년 전보다 열 배나 증가했다느니, 독거가구가 30%를 넘었다느니 하는 뉴스들은 이제 비루할 정도로 확연해졌다.

더구나 학생으로서 결혼한다는 것은 청년 자신들도 상상하지 않고 부모들도 반대 일색이다. 결혼이 그토록 위험한 것인가. 학생 시절 결혼하면 공부도 못하고, 돈도 필요하고, 주거시설도 마련해야 하고, 시간도 모자랄 것이다. 나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좋다. 결혼이 그토록 위험한 일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더 잘된 일이다. 사랑이란 위험할수록 고통스러울수록 고귀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이라도 연애하고 사랑하게 되면 결혼을 단행해야 한다. 결혼하면 아이가 생길 것이다. 더 위험한가? 좋다! 더 위험하니까 더 큰 사랑이 될 수 있다. 아이도 낳아야 한다. 오직 사랑을 위하여….

사실 학업이나 돈벌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인생의 고달픈 바람결에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사랑만이 절대적 가치이며 궁극적 가치다. 그런데도 세상은 사랑을 학업이나 돈벌이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사랑은 목숨보다 중요하며 존재 가치를 결정한다. 낭만적 이야기인 동시에 존재론적 필연이며 성경과 신앙의 결론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다. 국가와 사회의 할 일은 이 사랑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꽃피고 열매 맺도록 불안의 씨앗들을 제거하고 보호하는 장치를 설치해 비바람을 막아주고 북돋아 주는 일이 저들의 사명이다. 젊은이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사랑을 외면하고, 생명을 포기하는 사회는 힘이 있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로 만들어진 사회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기성세대는 무한 책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학들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진입하는 학생들을 위해 모든 장애를 벗겨주는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이 돈 없이도 결혼할 수 있도록 학교 시설을 개방하는 등 경제적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육아 휴학제도나 장학제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수많은 여성을 위한 정책 중에 대학생의 결혼과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기혼·출산 학생에게 기초생활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모든 대학에 기혼 학생용 다세대 숙소를 짓고 임대조건을 아주 낮춰서 진정한 혜택이 되게 하자.

교육부에서는 학생이 결혼하면 학비를 면제하고, 임신과 출산에 들어서면 생활비를 보조하는 예산을 마련하면 좋겠다. 국가에서 세운 건강가정진흥원에서는 학생들의 결혼과 임신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특별히 기획재정부에서는 모든 출산모에게 아기가 4세나 5세가 돼 직장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최저시급 수준 이상의 풀타임 직원 수입에 준하는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들은 청년들이 연애·결혼과 관련해 세속에 맞설 수 있는 신앙적 선택에 대해 가르치고 설득해야 한다.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다. 비성서적 가치관과 가정관이 문제다. 학업이나 직장이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문제다. ‘어떤 사랑, 어떤 가치관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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