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변화, 시작만으로도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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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0대 젊은 정치인 김영삼이 신민당 원내총무에 선출됐다. 파격이었다. 젊은 정치 바람은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으로 퍼졌다. 정권교체엔 실패했지만 42살의 김영삼, 44살의 김대중은 한국 정치에서 새 바람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40대 기수론은 야당의 세대 교체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꼭 반세기가 흐른 지금 보수야당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이준석 돌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가장 바뀌기 어려울 것 같던 정당에서 변화의 흐름은 연구대상이 될 정도다.

많은 분석과 해석이 있지만 이준석 돌풍의 원인을 찾아보면 우선 그의 사이다 화법(한 야당 의원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 없으면서도 논리 있는’)이 꼽힌다. 김종인 체제 이후 권력 공백 상태에서 젊은 정치인들이 활동할 공간이 넓어진 것도 원인이다. 초선 의원들의 당권 도전이 이어지면서 당대표 경선은 뉴페이스 대 올드보이 구도가 됐고, 이준석은 이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잇따른 전국단위 선거 참패, 계파정치 몰락으로 새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낼 여지도 생겼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변화하라’는 민심의 요구다. 이준석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닌 보수정당에 혁신하고 체질을 개선해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하라는 의미다.

젊음은 정치무대에서 큰 무기다. 유독 한국 정치무대에서만 젊음은 미숙함, 경륜 부족과 동의어가 됐었다. 39살에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대통령이 됐고,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 보수당 대표가 됐다. 버락 오바마는 47살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준석 돌풍은 더불어민주당에는 큰 숙제를 안기고 있다. 보수야당이 세대교체를 기치로 새로움과 변화 드라이브를 걸면 민주당으로선 낡은 이미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때 젊은 정치의 대명사였던 386들은 이제 장기집권하는 586 기득권 세력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친문의 장악력이 여전한 민주당에선 젊은 정치인들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친문 강성당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일부 초선들의 목소리만 나올 뿐이다. 이제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더 경직돼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놀랍고, 두렵고, 부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야당이 먼저 세대교체 흐름에 올라탔다면 여당으로선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물론 1985년생, 36세 청년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또 대표가 된다 해서 그 자체가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이준석 리더십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대선을 관리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예단하기도 어렵다. 그는 혁신과 공정의 가치를 얘기하면서 실현할 구체적 비전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지역과 다선 의원들이 주름잡던 여의도 정치에 0선의 젊은 정치인이 도전하는 것 자체는 혁신적 변화다. 특정지역과 선수 높은 의원들이 주도해온 중앙 정치무대에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구정당’ ‘꼰대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받던 국민의힘이 세대교체에 성공한다면 정치엔 일대 변혁이 앞당겨질 것이다. 이준석 돌풍이 실패해도 낡은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이에 부응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그렇지 않고선 변화는 요원하다. 당대표 선출을 코앞에 둔 지금 관전자들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30대 정치인의 돌풍, 그 자체로 한국 정치에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변화는 그 시작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을 관전자들은 그대로 느끼면 된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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